부인이 무리한 요구를 했다며, 해서는 안될말을 했다며, 부인을 때려서 코뼈를 부러뜨리고, 유산을 시킨 사건이였다. 그때 대다수 언론은 여자측의 잘못을 백번 인정하더라도,폭력은 용서 될수 없다는 쪽에 더 많은 손을 들어 주었다.
몇일 전, 오락실에 감금된 시민을 구하러 출동한 경찰들이 오락실 업주/종업원들과 집단 난투극을 벌인 일이 이슈가 되고 있다.
신문들의 논조는 오락실을 습격(襲擊)(실제로 XX일보 기자가 사용한 단어다. 정상이라면 '급습(急襲)'이 맞는 단어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단어를 선택했는지 의심스럽기까지 하다.) 하면서, 방망이-큐대를 사용한 경찰의 과잉 진압에 문제를 삼는 쪽이였다.
과거 레슬링선수였던 업주, 무술유단자인 종업원 등은 '업주의 눈부위가 부었다.' 정도로 피해 상황이 표현 되었고,진압에 나섰던 경찰관은 '갈비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다' 라고 표현을 했다.
업주-종업원이 7명, 출동한 경찰관은 5명 더군다나 긴급출동이라 집에서들 출근했다고 한다. 긴급한 상황이라는 판단에 집에서 현장으로 출동을 했고, 차에 있는 무기라고는 5명이 합쳐서 방망이 두개에 큐대 하나였다고 한다.일인당 진압장비를 하나도 채못들고 있었다는 말이다.
여기서 의문이 생긴다. 영화에서 보면 강력반 형사들은 총을 차고 다니는데, 왠 방망이? 이 의문은 집에서 현장으로 바로 출동한 내용으로 이해가 된다.
일단 밝혀진 사실을 정리를 해보자면.
1.오락실 업주와 종업원들이(이하 깡패라 칭하겠다.이게 친근하지 않은가? ) 도박쟁이 손님들을 감금/폭행 하고 있다가, 경찰에 신고, 경찰이 출동했다.
2.경찰은 쪽수가 딸렸다. 깡패는 7명, 경찰은 5명이였다.
3.경찰은 깡패들이 경찰이라고 쫄지 않는걸 안다.
4.경찰은 방망이와 큐대를 들고, 깡패에게서 도박쟁이 손님을 구했다.
5.경찰관 2명은 중상, 갈비뼈가 부러졌고, 깡패는 업주의 눈부위가 멍들었다고 한다.
6.눈에 멍보다는 갈비뼈 부러진게 아픈건 삼척동자도 다 안다.
7.언론은 경찰이 과잉 진압이라며 잘못했다 한다.
그래서 난 언론이 미쳤다고 생각한다.
언론은 무슨일이 생기면 선진국의 비슷한 사례를 들어 비교를 하곤한다.
가장 많은 예를 찾는 영국,미국,독일,프랑스의 경우 총기를 소지 하지 않더라도, 경찰관의 공권력에 대항하면 강한무력진압을 진행한다. 심지어는 손에들고 있는 생수통을 내려놓지 않는 다는 이유로 총격을 당해 죽은 녀석도 있다. (아무것도 들고 있지 않았는데, 손을 안주머니에 넣었단 이유만으로도 죽은 녀석도 있고, 신문지를 돌돌 말고 들고 있다가 총격 당한 녀석도 있다. 경찰에 저지 명령에 복종하지 않고 도주한 녀석도 벌집이 된다. )
그렇게 좋아하는 "선진국" 경찰의 공권력 집행을 예로 들만도 한데, 왜 언론은 그 얘기는 하지 않을까?
폭력배에게 인권을 이야기 하고, 피의자의 인권을 생각한다며 설치면, 누가 목숨걸고 피의자가 아닌 국민대다수를 보호해준단 말인가?
소수의 인권을 위한다던 그 잘난 인권단체는 "한 형사의 갈비뼈"를 어떤 방식으로 인권수호 해 줄것인지 궁금하다.
형사 한사람이 죽어야, 그제서야 깡패편에 서있던 인권이 경찰에게 돌아서는건가?
잘난 펜대 하나로,잘난 키보드 펀칭 한번으로 민중을 대변한다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대학 졸업률이 국민전체의 30%도 되지 않던 7,80년대의 사고 방식에서 벗어나, 확실한 미래를 보는 언론으로 다시 태어나길 기대해 본다.
덧말 : 기사의 뎃글을 보면서, 그래도 이 시대에 여론이 편향적이지 않다는 희망을 봤다. 기자의 논조에는 가차없는 비판을 했지만, 예전처럼 기자에 대한 인신공적성 글이 없었기 때문이다.
두려움이 참 많은 아이였다, 나란 아이는.
뭘 하나 하면 이러면 어떻하지, 저러면 어떻하지..
하면서..
사람들의 싫어하는 표정이 싫었고, 새로운 사람을 만나는 것도 참 무서웠다.
진짜다. 지금 날 아는 사람들이 이런 옛날에 내 얘기를 하면 웃는다.
"니가 무서운게 있었고, 두려움이란게 있었어? 말을 하기전 유아기때 얘기 하는거 아냐?"
그렇다. 난 지금 참, 말 잘하고, 사람만나는걸 즐기는
사람이 되었다.
두려움을 완전히 극복했다고 말할수 있겠다.
그 두려움을 극복하는 방법중 하나는 두려움에 관한 명언을 주루룩 머릿속에 외우는
방법이 가장 좋다. 내 경우가 이랬으니.
우리가 생각할수 있는 모든 불행이, 실제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는 거의 없다.
두려움을 극복하고, 그 일을 해보면, 생각보다 쉽다는 것을 알수 있다.
내 경우는 모든 경우가 그랬다.
예전에 나는 음식점에 가서 , 내가 시킨것이 아닌 다른것이 나오더라도,
웃으며 "괜찬아요" 하면서 먹는 그런 착한 아이였다.
지금은 내가 시킨것이 나와도,"바꿔주세요. 생각 바꼈어요." 라면서 우기는 아이다.
뭔가 꼬투리가 잡힐만한 걸 찾으면, 그 꼬투리로 오만 불만을 표출하는, 서비스계의 적이다.
동생에 표현을 빌자면, "모든 알바생의 적" 이란다.
실수란 단어를 즐기는 일도 참 많이 한다.
난 참 실수가 많은 사람인데, 그 실수는 다시는 하지 않는 사람이기도 하다.
뭐 안 그런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그렇다.
"음주운전" 을 한적이 있다. 그래서 "면허정지"를 받은 적도 있다.
사실 지금도 면허 정지 기간이다. 사회에 지탄을 받을 음주면허정지지만,
나름 많은 것을 배웠다 생각한다.
평생 안타볼꺼 같던 서울시내 노선버스를 타봤고,
(지금 이순간 까지도, 고속버스를 한번도 타보지 않았다.사실 버스멀미 한다. ㅋㅋ )
지하철 막차의 여유도 즐겨 봤고, 지하철 환승역에서 택시를 30분간 잡아본적도 있다.
이 모두가 내가 면허정지 기간이 아니였다면, 해볼수 없는 경험(!) 들이였다.
면허정지기간중에, 정지교육을 받아보기도 했고, 머릿털 나고 처음으로 사회봉사도 해봤다.
(독거노인 도배 작업이나, 이런건 해봤는데, 학점을 따기 위해서 였으니.. 패스..)
새로운 것들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 버리면,
세상은 모든순간이 새롭고 신기하다는 것이 내 지론이 되어 버렸다.
현상태에 머물고 있는 내 자신이 뭔가 두려움에 걱정을 하고 있다면,
한번 웃으며, 툴툴털고 "그까지꺼!" 라고 외쳐보면 어떨까?
위대한 발견은 눈앞의 자질구레한 일에 매몰되지 않고,
눈을 들어 시야를 넓힌 사람에게만 허용되었다.
-앨버트 아인슈타인
이런저런 일로 지하철을 타고 출퇴근을 하고 있다.
한달정도 지하철을 타고 다니고 있는데, 이게 참 잼있다는 것이다.
남들 보다 좀 과하다 싶을 정도로 많이 타는 것도 아니고,
타자마자 내릴수 있는 거리를 타는것도 아니라.
나름 정신을 차리고 지하철을 탈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천천히 주변을 둘러보면, 자는 사람들이 50% 정도이고,
나머지는 신문을 본다. 아..극소수의 얼리어댑터 들도 보인다.
PDA로 영화보는 사람, 핸드폰으로 지상파나 위성 TV를 보는 사람들..
그런데!
신문도 보지 않고 잠도 자지 않는 사람들이 있으니...
이런 부류들은 멀뚱 멀뚱... 뭐하는 분들인지..원..
이런 사람들과 가끔 눈이 마주치면 민망함이 말을 할수 없다.
내 신문을 보는 건지 아님 뭔가 돈 되는 꺼리를 찾으시는건지..
암튼.. 남는 시간을 효율적으로 활용하지 못해 보이는 이런분들..
오지랍도 넓다! 라고 할지 모르지만 .. 심히 걱정된다.
신문을 보다.. 엄청난 아이디어가 떠오를 수도 있는 것이다.
자질구래한 지하철 세태를 보는 것 보다는 그 시간에 좀 더 현명한
무언가를 찾는 것이 "위대한발견"에 좀 더 근접 할수 있는 것이 아닐까?